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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후기

빠르크의3분강좌 2023. 8. 17.

콘크리트 유토피아 후기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 엄태화 감독, 이병헌, 박보영, 박서준,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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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무너졌다 우리 아파트만 제외하고

https://youtu.be/hAO9a1xSo3M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줄곧 들었던 감정은 '불편함'이다. 극장에서 2시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감정의 원인이 무엇일까 영화 관람을 끝내고 생각해보니 한 가지 결론은 영화 속 극 중 상황에 너무나 몰입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심에는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자연스러웠고 그런 배우들의 연기력이 한껏 발휘될 수 있도록 감독의 꼼꼼하면서 능수능란한 연출이 있었다. 

 

소재 자체가 아파트이기 때문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도 바로 이 아파트가 처음 한국에 소개될 때부터 충분한 자료 조사로 만들어진 모션그래픽 영상이 압권이다. KBS 모던코리아 팀이 이 오프닝 시퀀스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감독님의 짧은 인터뷰를 들어보면 더욱 좋을듯 하다.

https://youtube.com/shorts/2yn2Cf2tmVA?feature=share 

https://twitter.com/kr_modern/status/1684752835723014144?s=20

 

 

한국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특히 미국에 다녀오면 한국의 아파트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지만 실상은 단절된 공동체가 바로 아파트다. 평소 얼굴도 모르며 지내다 어쩌다 가끔 아파트 엘레베이터나 복도에서 인사하는 것이 전부인 한국의 아파트 문화가 이 영화 속 갈등의 큰 뿌리가 된다. 그렇기에 더욱 극 중 이야기가 현실의 한 부분처럼 다가왔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씬을 꼽자면 초반부에 나오는 '반상회' 씬이다. 한 겨울에 서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대지진이 일어나고 극 중 이야기의 중심 공간이 되는 황궁아파트 1동만 멀쩡하게 남아있다. 외부인들이 점점 이 아파트로 몰려오게 되면서 원래 살고 있는 입주민들이 반상회를 통해 앞으로의 일을 결정해야 한다. 각 집에서 살고 있는 세대주들이 아파트 부녀회장 집에 촘촘하게 모여 앉아 있으니 몸을 크게 움직이기 보다는 말을 통해서 장면에 에너지를 넣고 흐름을 살려야 한다.

 

여기에서 인상 깊었던 연출이 바로 리액션이다. 리액션은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을 잠깐 비췄다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주로 컷에 담아낸다. 오디오는 다른 사람의 것인데 실제 나오는 화면은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의 표정들이 나온다.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컷 전환 속도도 빠르고  앉아 있지만 오히려 더 경쾌하고 시원시원한 느낌도 있다. 후에 감독님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 반상회 씬을 찍을 때 재미있었다고 하셨다. 단역을 포함한 배우들에게 '당신은 몇 호에 살고 있고 어떤 성격의 사람이다' 라고 꼼꼼하게 사전에 일일이 전화를 다 돌리면서 준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말 우리 아파트에도 살고 있을만한 사람들이 정말 반상회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그 공간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카메라의 위치도 실제 앉아 있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잡고 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이야기의 구조상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한다면 아파트 동네 잔치 씬 이다. 그 씬을 기준으로 영화의 분위기와 흐름이 바뀐다. 이병헌이 연기한 김영탁이 마이크를 잡고 윤수일의 명곡 '아파트'를 부르면서 플래시백으로 과거의 이야기들을 보여주면서 줌 아웃으로 현재와 교차하는 부분이 있는데 편집적인 면에서도 인상깊었다. 이야기의 시간 구조가 재난이 일어난 이후의 시점부터 시작되다 보니 재난 이전의 상황과 이야기는 인물의 회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정보가 부족한데 서서히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점점 긴장과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에서 이병헌의 연기가 좋았다고 한다. 특히 말투에서 김영탁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데 있어 그 탁월함을 느꼈다.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있어 이병헌의 눈빛이나 말투, 표정 등에서 시작된다. 초반부에 이병헌이 연기한 김영탁은 뭔가 자신감도 없고 쑥스러움도 많은 사람으로 나온다. 동대표가 되어 소감을 말할 때 그 특유의 말을 평소에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얼버 부리면서 말을 황급하게 끊는 연기에서부터 점점 동대표로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며 광기를 드러내는 모습까지 인물의 행동을 설득력있게 잘 표현했다. 

 

개인적으로는 김선영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김선영은 극 중에서 부녀회장 역할을 맡았는데 살기 좋은 아파트를 재건하기 위해 사람들을 독려하고 진두지휘 하는 모습은 설국열차에서 틸다 스윈트가 연기한 '메이슨'이 겹쳐졌다. 후반부에 소중한 것을 잃은 애통한 마음을 표현하는 부분은 내가 영화를 보는 것인지 뉴스 제보화면을 보는 것인지 착각이 들만큼 정말 연기를 잘하더라.

 

박서준과 박보영이 부부 연기를 했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내면의 변화가 드라마틱한 캐릭터들이다. 두 인물이 각자 중요한 행동을 계속하게 되는 동기가 남편은 아내와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하고 아내는 남편이 잘못된 길로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시작된다. 또한  인물들이 행동을 하는 동기를 가정환경이나 직업적인 부분에서 설득력을 갖고자 했다. 결혼을 일찍 하여 대출을 무리하게 받아서 아파트를 장만하고 공무원, 간호사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캐릭터로 표현했다. 다만 좀 아쉬웠던 부분은 박보영이 연기한 명화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영화 속에서 다소 부족하게 표현된 점이다. 명화는 인간성을 잃고 타락해가는 아파트에서 선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나타난다. 엔딩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명화는 영화의 주제를 표현하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의 핵심 주제를 나타내는 역할인데 왜 끝까지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어려운 이들을 도우려는 마음과 행동을 했는지 그 부분을 좀 더 이야기해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다. 가족들을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나선 황궁아파트 탐험 대원들이 식료품 가게를 찾았을 때 그곳을 지키던 가게 주인을 제압한다. 하지만 가게 주인도 무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는 절박한 사람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죽은 가게 주인을 끌어안고 울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비춘다. 다양한 인간 군상과 함께 왜 그런 행동을 선택했는지 그 선택의 결과는 어떤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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