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존재 이호식으로 본 슬램덩크
나이 들고 본 '더 퍼스트 슬램덩크' 후기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돌아왔습니다.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아 오리지날의 느낌과 세련된 기술이
만화책 안으로 들어가 실제 경기를 직관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기를 알고 다시 보는 스포츠 경기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있지만
결과를 알고 있기에 좀 더 경기 내부적인 혹은 외부적인 요소들이 더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 보던 슬램덩크와 나이가 들어서 보는 슬램덩크는 다른 부분이 보이거든요.
개인적으로 이번 극장판을 통해 정말 크게 다가 왔던 대사는 작중 북산고의 벤치 멤버들 중 이호식이 했던 대사였습니다.
이 대사가 나온 맥락은 북산과 산왕의 경기 중 나왔습니다.
이제 경기 종료 1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추격을 하던 북산이 극적으로 정대만의 3점슛이 들어갑니다.
그 와중에 산왕 수비의 반칙으로 자유튜 1개도 얻은 상황입니다.
북산 벤치가 모두가 감격해하고 있는 순간에 멤버였던 이호식이 내뱉는 대사입니다.
극장판 더빙판에서는 '농구부에 들어오길 잘했어' 로 나왔습니다.
북산 베스트 5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송태섭, 정대만은 모두가 알고 있는 멤버들이고 주전입니다.
그에 비해 벤치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멤버들은 안경선배 '권준호'를 제외하고는 나무위키나 인터넷을 찾아봐야 이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학년이나 나이도 잘 모르는데 검색을 해보니 이호식은 강백호, 서태웅과 같은 1학년으로 나옵니다.
문득 들었던 생각은 이호식은 왜 농구부에 들어왔을까?
농구 선수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었을까?
같은 또래지만 경기에 주전으로 나서서 맹활약하는 서태웅과 강백호를 벤치에서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제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그냥 '농구가 좋아서' 농구부에 들어왔을것이다.
아마추어 고교 농구부이고 사실 프로선수가 되기 보다는 방과후 활동으로 재미 삼아 농구부에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북산고 1학년 학생들이 농구가 좋다는 이유로 입부를 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학기 초 북산고의 위상만 봐도 사실 최약팀으로 평가 받고 있었고 전문적인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농구부를 입단을 한다면 상양이나 해남고등학교로 혹은 산왕공고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호식의 입장에서는 학교 방과후에 뭐라도 해야하겠고 그러면 재미 삼아 농구부라도 들어가서 농구라도 배워보자 이런 마음으로 들어갔겠죠.
그런데 생각보다 농구부, 뭔가 이상합니다.
3학년 무섭게 생긴 주장 채치수는 목표가 전국제패라며 혹독하게 훈련시킵니다.
아니 전국대회는 무슨 도대회에서도 예선 광탈하는 북산인데...
어렸을 땐 그러려니 했는데 커서 보니 이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건가 확 느껴집니다.
고등학교에서 수업 듣고 오면 방과후에 농구부에 갑니다. 이호식은 1학년이다 보니 미리 체육관 청소도 해야 하고 부원들이 연습에 집중할 수 있게 이런 저런 잡일도 도맡아 했을 것입니다. 같은 1학년인 강백호는 뭐 지각을 해도 당당하고 체육관 같이 청소하는 걸 못본거 같은데...
게다가 연습의 강도 역시 허투로 하지 않고 전국대회 수준에 맞춘 고강도 훈련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학기 초 구름처럼 입부했던 1학년 학생들도 능남고와의 연습 경기 이후 탈퇴 러쉬가 이어집니다. (능남고등학교로 가는 열차 안에서 엉덩이를 들고 있으라는 훈련을 빙자한 가혹행위 등) 이런 채치수의 지옥 훈련을 견딘 최후의 1학년 5명 멤버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이호식입니다.
그렇다고 연습을 열심히 하면 주전으로 뛸 수 있는건가. 그것도 아니죠. 같은 1학년이지만 넘사벽의 서태웅이 있고 나날이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강백호도 있습니다. 나보다 실력이 좋은 2학년 선배들도 주전으로 못나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냥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면서 연습하고 틈틈이 수업 듣고 공부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팀원 모두가 열심히 땀흘리고 노력하며 도에서 2위를 차지하며 전국대회에 진출하고 놀랍게도 전국대회 첫 출전하였는데 1차전도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난 상대가 하필이면 전통의 강호, 우승 후보 산왕공고 였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송태섭의 어린 시절 장면이 나오는데 어린 송태섭의 형이 즐겨 보던 농구 잡지 표지에 산왕공고 선수가 소개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등학교 선수가 농구 잡지 표지모델이 된 것을 미뤄본다면 아마 농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국적인 명성이 있는 명문의 그 팀과 우리 팀이 맞붙는 상황이 된거죠. 그런 팀을 상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격하는 모습에서 내가 이 팀의 멤버라서 너무나 자랑스럽단 생각에 '농구부에 들어오길 잘했어'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거죠.
어렸을 때는 내가 강백호처럼 멋있고 좌충우돌 하지만 성장하는 모습을 좋아하고 '핫핫핫 나는 천재야' 라며 떠들었지만
커서 보니 나는 강백호가 아닌 이호식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많고 내가 노력하는 만큼 재능 있는 이들은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재능 있는 그 친구들은 나중에 체대에 가고 프로에 가서 프로 무대에서 더 멋진 활약을 보일 수 있겠죠. 그들은 특별한 존재이고 스타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겠지만 대부분은 열심히 훈련해도 겨우 경기에 나설 수 있을까 그마저도 기다려야 하고 이름 조차 검색을 해야 겨우 알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보통의 존재들입니다.
전국대회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그들은 다시 학교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방과후에 일찍 체육관에 도착해서 준비를 하고 묵묵히 땀을 흘리며 연습을 할 것입니다. 연습이 끝난 체육관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겠죠.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수고가 있기에 팀이 유지되고 베스트 멤버들이 더욱 빛이 날 수 있는거죠. 그렇다고 해서 벤치에 있던 그 멤버들은 실패자가 되는건가?
꼭 전문적인 프로 선수가 되어야 성공하는 것일까요? 전국대회 제패를 해야 성공한 것일까요? 물론 그것도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눈에 보이는 성공입니다.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 역시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농구부 활동을 했었다고 합니다.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농구를 하기에는 키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잘했다면 아마 만화를 그리지 않고 농구 선수의 길로 갔겠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를 미술쪽으로 잡으면서 만화가의 길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농구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이 바로 슬램덩크 입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역시 성공했습니다. 다만 농구가 아닌 만화가로 성공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고 시간이 지나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극장판으로 개봉한다는 소식에 극장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이야기하는 성공은 눈에 보이는 성공, 숫자로 이야기하는 성공입니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고 퍼센테이지는 얼만큼 늘어났으며 유의미한 수치, 투입과 결과로 이야기합니다. 무언가를 가져야만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하는 성공은 조금 다른 의미인듯 합니다.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잠깐 정우성의 이야기도 펼쳐지는데 정우성이 했던 기도 내용이 나옵니다. '고등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했다. 나에게 필요한 경험을 달라' 라고 합니다. 실패를 통해 얻는 경험은 눈물이 흐를만큼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앞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는 성장의 자양분이 됩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상황은 좋지 않지만 멀리 보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도전하는 것이죠. 머무름이 아닌 지금의 아픔을 참고 견디며 계속해서 도전하며 나아가는 태도가 성공한 삶의 모습이지 않을까
어렸을 적 슬램덩크를 좋아하고 즐겨 보던 독자들은 세월이 지나 이제 각자의 삶에서 필드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긴 세월이 지나 슬램덩크는 그 시절 그 코트로 우리를 다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냥 지나간 그 시절을 그리워 하며 잠깐 즐거워하자는 아닌거 같고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고 열광했던 그 모습으로 앞으로를 살아가자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 큰 감동이 있었고 다시 열정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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