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를 읽고 든 생각들

이 책은 최재천 교수님의 인터뷰를 엮어 만든 책이다. 질문을 하는 분도 대답을 하는 분도 보통 내공이 아니다. 그 두 분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평소에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자꾸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공부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은 "알면 사랑한다" 이다.  자연을 공부 할수록 자연을 사랑하게 되고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는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나도 적극 동의한다. 그래서 공부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특히나 코로나 19 이후의 교육이 어떤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할 지 개인적으로도 고민이고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관한 저자의 의견 역시 궁금하였다. 저자는 현재 우리 공동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교육의 효과임을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저자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삶에 있어 필요한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삶을 즐기면서 자라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훈련을 교육하지 않으면 언제든 코로나 19와 같은 위기 상황이 다시 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제가 처음 미국에 도착했던 시간부터 오늘까지 큰 흐름을 돌이켜보면 우리의 의식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어요. 저는 열심히 가르쳤고, 열심히 배운 교육 효과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교육 전체를 부정하며 교육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제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어떤 교육을 하면 좋을지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제라도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하고, 모두가 삶을 즐기면서 자라나도록 길을 내야 합니다.

 

아이를 가르쳐서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세상을 보고 습득하도록 어른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그것이 바른 교육입니다.

 

물론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최소한의 셈은 할 줄 알아야 하죠. 역사도 알아야 하고요. 단, 지금처럼 변별력을 주려고 시험 문제에 얄궂은 묘수를 부려 아이들을 고생시키는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은 먼저 가르치려고 덤벼들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일종의 촉진자facilitator가 되어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은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이 내용을 가르치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코로나19 같은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게끔 기본적 훈련을 교육이 담당하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재앙을 겪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공부의 구성 요소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어차피 조금은 엉성한 구조로 가는 게 낫다. 이런 것에 덤벼들고 저런 것에 덤벼들면, 이쪽은 엉성해도 저쪽에서 깊게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쪽과 저쪽이 얼추 만나더라.’ 깊숙이 파고든 저쪽이 버팀목이 되어 제법 힘이 생깁니다.

https://youtu.be/9BijiFP0Fkg

저자가 꼽는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약한 지점은 토론으로 꼽고 있다. 토론은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아 상대방을 난처하고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토론의 목적이 아님을 상기한다. 토론이 정착되기 위해선 실수하는 것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조성되야 함은 물론 기본적인 글쓰기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약한 지점은 토론이에요.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교과 과정을 마칩니다.

 

저도 토론을 이끌 때 그런 식으로 나아갑니다. 먼저 질문을 던져놓고 한 분에게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이 가장 잘 이야기해주실 것 같은데,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분에게 말을 겁니다. “지난번에 이와 비슷한 질문에 답변하신 것 같은데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분은 쉽게 이야기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분 답을 들으면서 다른 분에게 생각할 시간을 드리는 겁니다. 그려면 청중들은 정돈된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식으로 한다면 토론하는 목적이 실종될 수밖에 없죠.

 

우리는 실수하면 완전히 그 동네에서 매장된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더라’가 제 결론이고요. ‘너무 겁먹지 말고 들이대라’가 제 조언입니다.

 

국립생태원장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실수한 사람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실수한 사람을 꾸짖지 않는다’라는 철칙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요. 제 경영 십계명 중 하나입니다.

 

결국, 말을 잘하려면 글쓰기를 잘해야 하니, 평소에 많이 읽고 많이 관찰해야 합니다.

 

 

저자는 독서를 통한 공부를 이야기한다.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긴 하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경우 독서는 재미있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하지만 최재천 교수의 경우는 독서는 일이어야 하고 빡세게 해야 함을 강조한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 가짐이 두 분의 의견이 다른데 재미있게도 어느 순간 책을 읽다보면 책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해되는 '독서력'이 생겨 독서가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독서는 일이어야만 합니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 독서를 취미로 하면 눈만 나빠집니다.

 

많이 읽은 사람들이 글을 잘 써요. 읽은 내용을 기억해서 베끼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문장이 탄생합니다.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독서량이 늘어날수록 완전 새로운 분야의 책을 접할 때, 전보다 덜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학교를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결국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죠.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독서는 기획해서 씨름하는 ‘일’입니다.

저자의 책을 통해 결국 공부라는 것은 더욱 사랑하기 위해 하는 행위라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자녀 교육에 대한 서적을 읽는 부모도 결국 그 마음은 자녀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다. 아이의 심리와 교육 서적을 읽는 선생님도 아이들을 더욱 잘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다. 성경을 읽는 기독교인 역시 하나님을 더욱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사람은 자연스레 자기만을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인정은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부부가 왜 서로에게 활력이 될까를 생각해보면요. 서로의 뜻을 존중하며 살고자 하는, 삶이 지닌 본연의 가치를 배움 속에서 다져왔기 때문일 겁니다.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데는 바로 그 존중이 바탕으로 자리 잡혀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각자가 뿜어내는 가치가 보입니다.